SAPERE의 첫 두 모임에서는 AI를 쓰면서 달라진 업무와 선택을 나눴습니다. 한 AI 전환(AX) 담당자는 결과를 일정하게 얻기 위해 반복 업무를 스크립트로 만들었고, 한 로펌은 AI가 쓴 초안을 시니어가 수정하면서 주니어 채용을 줄였다고 합니다. AI가 대신 거래한 실험에서는 모델에 따라 성과가 달랐지만, 참여자가 느낀 공정성에는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모임은 매주 한 번 디스코드 음성 채널에서 한 시간 남짓 열립니다. 시스템 통합(SI) 기업에서 사내 AX를 맡은 직장인, 경제학 전공 대학생, AI 스타트업을 창업했다가 매각한 연구자, 대학 연구실의 학부연구생이 참여했습니다. 개발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1년 전까지 코드를 한 줄도 몰랐던 사람도 있습니다.
1주차: 각자의 AI 활용 경험
첫 모임에서는 반복 업무를 스크립트로 바꾼 사례와 AI가 쓴 메일·논문 노트를 직접 확인하는 방법을 들었습니다. 매일 하는 일을 중심으로 AI에 맡긴 작업과 사람이 확인하는 부분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AX 담당자: 반복 업무의 스크립트화
AX 담당자는 규칙이 정해진 반복 업무를 AI로 만든 스크립트로 처리합니다. 같은 일을 매번 AI에게 시키면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스크립트는 정해진 절차대로 실행돼 더 정확하고 빠르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거래처마다 다른 이력서 양식을 맞추는 일, 천 줄이 넘는 재무 엑셀에서 월별 실적을 모으는 일이 그 예입니다. 스크립트를 한 번 만들어 두면 이후에는 토큰을 쓰지 않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비싼 요금제를 지원해 주지 않는다는 점도 이 방식을 택한 이유였습니다.
그가 사내 도입에서 가장 어렵다고 꼽은 일은 초기 설정이었습니다. 동료들은 무엇을 왜 설치해야 하는지부터 물었고, AI에 일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구성원들의 업무 절차를 문서화하면서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했습니다. 도구를 만드는 것 외에 동료들이 쓰도록 설명하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대학생: 과제에서 시작한 코딩
대학생 참여자는 데이터 분석 과제를 계기로 AI에게 답을 받아 복사하는 데서 직접 코드를 만드는 쪽으로 사용법을 바꿨습니다. 과제에서 처음 코드를 접한 뒤 AI와 대화하며 코드를 만드는 바이브 코딩을 거쳤고, 지금은 터미널에서 AI를 씁니다. 1년 전에는 GPT의 답을 복사해 붙이는 정도로 썼습니다.
그는 AI가 여러 분야를 두루 안다는 점을 유용하게 봤습니다. 한 분야에서 막힌 문제를 다른 분야의 방식으로 풀어 보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눈 대화는 문서로 모아 다음 대화에 참고 자료로 넣습니다.
그의 주변에서는 부모 세대가 AI를 검색창처럼 쓰고, 대학 동기들도 대부분 무료 챗봇을 쓴다고 했습니다. 개발 지식이 없는데도 일상의 여러 작업을 자동화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나이보다 관심도에 따라 사용 방식이 달라진다고 봤습니다.
아래 그림은 올해 초 SNS에서 퍼진 AI 사용 분포 추정치입니다. 원 출처가 확인되지 않아 실제 이용률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연구자: 비서 에이전트의 메일 초안 수정
개인 비서 에이전트 두 개를 써 본 연구자는 둘 다 쓸 만했지만 메일 초안은 매번 직접 고쳐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미지로만 올라온 정보도 잘 찾지 못해, 아직은 “명확한 일을 잘 처리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나는 메일과 일정을 읽고 먼저 움직이는 비서입니다.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 일정을 보고 “호텔이 예약을 취소할 수 있으니 미리 연락해 두겠다”며 메일 초안을 써 오는 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쏟아지는 논문을 관심사에 맞게 골라 주는 리서치 비서입니다.
그는 모델을 바꾸면서 함께 쓰는 도구도 줄였습니다. 초기 모델에서는 스킬과 플러그인을 많이 붙였지만, 최신 모델에서는 적게 붙이는 편이 결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계획 단계에 쓰는 도구 하나만 남겨 두고 거의 기본 상태로 씁니다. 한 번에 입력하는 자료도 모델이 받을 수 있는 최대 분량의 절반 이하로 제한하는 편이 낫다는 경험을 나눴습니다.
학부연구생: “결론은 내가 쓴다”
학부연구생의 연구실에서는 AI가 생성과 수정을 반복하되, 출처와 계산은 사람이 확인하고 결론도 직접 씁니다. 논문 노트 역시 각 문장이 원문의 어느 대목에서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른 참여자가 대신 소개한 이 사례에서는 사람이 장면을 구상하면 AI가 생성과 수정을 맡습니다. AI가 하루 종일 시도해도 풀지 못한 문제는 사람이 다시 맡습니다. 이 작업에 적용하는 원칙은 다섯 가지였습니다.
- 출처는 직접 열어 본다.
- 계산은 다시 돌린다.
- 칭찬 대신 약점을 묻는다.
- 데이터는 조심한다.
- 결론은 내가 쓴다.
2주차: AI가 바꿀 시장과 생활
두 번째 모임에서는 돌봄 인력의 부족, AI 도입에 따른 전문직 채용의 변화, AI가 대신 협상하는 거래를 다뤘습니다. 각 발표에서는 도입 비용과 인력 양성, 거래 권한처럼 기술을 실제로 쓰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돌봄: 센서와 업무 보조 AI의 도입 전망
돌봄 분야의 발표자는 고가의 휴머노이드보다 센서와 업무 보조 AI가 먼저 도입될 것으로 봤습니다. 돌봄 인력은 부족해지지만,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요양 현장에서 한 대에 수천만 원 하는 로봇을 구매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1,112만 명, 전체의 21.6%입니다. 이미 다섯 명 중 한 명이 고령자이고, 이 비중은 2050년이면 40%를 넘을 전망입니다.

문제는 돌볼 사람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4월 보고서에서 장기요양 수요가 2043년이면 2023년의 2.4배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반면 요양보호사는 2034년 80만 6천 명에서 정점을 찍고 줄어듭니다. 지금 수준의 돌봄을 유지하려면 2043년까지 99만 명이 더 필요한데, 이는 2023년 현재 일하는 요양보호사 전체(71만 명)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요양보호사의 고령화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요양보호사의 63%가 이미 60세 이상이고, 이 비중은 2043년 72.6%까지 오릅니다. 노년층이 노년층을 돌보는 구조입니다. 대구, 부산, 경북처럼 고령화가 빠른 지역일수록 공백은 더 큽니다.
발표자가 도입을 예상한 기술로는 낙상 감지 센서, 생활 패턴의 변화를 기관에 알리는 사물인터넷(IoT) 기기, 발화 패턴으로 치매 위험을 선별하는 서비스, 서류 업무를 줄이는 AI가 있었습니다.
구매 주체로는 개인보다 기관과 정부를 예상했습니다. 도입 여부를 판단할 때도 말벗 기능뿐 아니라 낙상을 얼마나 줄였는지, 업무 시간을 얼마나 아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KDI 보고서에서 정원 80명 이상 요양시설을 조사한 결과, 열 곳 중 아홉 곳은 돌봄 로봇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들인 곳은 6.4%에 그쳤습니다.

한 참여자는 정부가 로봇을 도입하기보다 사람을 고용해 경제를 돌리는 쪽을 택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드웨어와 보조금에 의존하는 시장에서는 정책이 도입을 좌우하고, ‘AI 실버테크’는 마케팅 문구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발표자는 정책의 영향을 인정하면서, AI가 돌보는 사람의 업무를 줄이는 용도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업무 부담을 덜면 현장을 떠나는 인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KDI도 돌봄 로봇의 비용 대비 효과가 입증되면 재정 지원과 장기요양보험 수가를 적용하자고 권고했습니다.
전문직: 한 로펌의 주니어 채용 감소
리걸테크 자문을 하는 발표자에 따르면, 그가 자문하는 한 로펌은 AI가 쓴 초안을 시니어 변호사가 수정하면서 주니어 채용을 크게 줄였습니다. 양식에 맞게 조정한 AI의 초안을 주니어의 초안보다 낫다고 평가했고, 월 수십만 원의 구독료로 수백 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로펌은 거의 매 분기 주니어 변호사와 사무직을 뽑아 왔지만, 이제는 채용하더라도 분기에 한두 명이고 대부분 인턴으로 쓰다 내보낸다고 합니다. AI 초안을 수정해 소장이나 의견서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고객사 사례여서 별도 발표 자료 없이 설명했습니다.
발표자는 인건비가 높은 전문직일수록 업무를 자동화하려는 유인이 크다고 봤습니다. AI가 여러 분야의 기본적인 작업을 처리하면서 일부 전문 업무의 가치도 달라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를 “10점 만점에 누구나 5점은 하게 되면 7점짜리 전문성이 예전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는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한 로펌의 사례로 전문직 시장 전체의 변화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토론에서는 채용과 교육 문제가 이어서 나왔습니다.
다른 참여자는 사내 재무 업무를 자동화하며 비슷한 장면을 봤다고 했습니다. 품의서와 지출 결의를 읽고 승인하는 일이 AI가 브라우저를 직접 조작할 수 있게 되면서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니어 채용을 줄인 뒤 후배를 어떻게 양성할지도 논의했습니다. 발표자는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당장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도 몇 명씩 채용하는 로펌들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학병원의 회진처럼 선배가 후배를 데리고 다니며 가르치는 도제식 교육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AI가 작성한 법률 검토에 오류가 있을 때 누가 책임을 질지도 토론했습니다.
금융: AI가 대신 흥정하는 거래 실험
AI에게 협상을 맡긴 실험에서는 어떤 모델을 쓰느냐에 따라 거래 성과가 달라졌습니다. 더 좋은 모델은 팔 때 더 받고 살 때 덜 냈지만, 참여자가 느낀 공정성은 두 그룹이 비슷했습니다. 세 번째 발표에서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AI가 대신 거래할 때 사용자가 무엇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Anthropic은 올해 4월, 직원 69명에게 100달러씩을 주고 AI 에이전트가 사내 중고 장터에서 사고팔게 한 실험(Project Deal)을 공개했습니다. 에이전트들은 500개가 넘는 물건을 두고 흥정해 186건, 4,000달러어치의 거래를 사람의 승인 없이 성사시켰습니다.

실험에서는 참여자마다 성능이 높은 모델(Opus)과 가벼운 모델(Haiku)을 나눠 배정했습니다. Opus를 받은 사람은 거래를 더 많이 했고, 같은 루비도 Haiku로는 35달러, Opus로는 65달러에 팔렸습니다. 그럼에도 참여자가 평가한 공정성 점수는 두 그룹이 사실상 같았습니다.
발표자는 가격 외의 조건도 협상하는 경우를 예로 들었습니다. 노트북을 사려는 학생의 예산은 40만 원이고, 판매자는 50만 원을 원합니다. 학생이 문서 편집을 잘하고 판매자는 이직용 포트폴리오 정리가 급하다면, 각자의 AI가 “현금 40만 원에 편집 작업을 더하는” 거래를 제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양쪽의 조건을 맞추는 일을 거래의 구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학생이 먼저 편집을 해 주면 노트북을 못 받을 위험이, 판매자가 먼저 노트북을 보내면 편집을 못 받을 위험이 생깁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금융, 그의 표현으로는 거래의 집행입니다. 그래서 그는 AI가 확률적으로 답하더라도 금액과 권한만큼은 정해진 규칙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금을 맡겨 두고 결과가 확인되면 지급하는 구조, 처음 만난 AI의 신원과 평판을 확인하는 표준 같은 것들이 블록체인 업계를 중심으로 실험되고 있습니다.
발표자는 추천 후보를 누가 정하는지도 문제로 꼽았습니다. AI가 수수료를 많이 주는 판매자만 추천하면 사용자는 다른 조건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용자가 추천 이유를 확인하고 다른 경로로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Project Deal에서는 참여자의 46%가 이런 에이전트에 돈을 낼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음 모임의 계획: AI 작업 환경 공유
다음에는 각자의 AI 작업 환경을 직접 열어 보는 시간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이번에 소개된 스크립트나 논문 노트도 도구 이름만 들어서는 따라 만들기 어려워, 설정 방법과 사용 중 겪은 불편까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첫 모임에서는 SNS의 “댓글 달면 프롬프트 보내드려요” 같은 콘텐츠로는 실제 업무에서 AI를 어떻게 쓰는지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매주 한 명씩 “나와 내 주변의 AI 활용”을 묻는 인터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데이터처, 「2026 고령인구 통계」(2026.10.1)
- KDI, 「노인돌봄서비스 인력의 전망과 정책방향」, KDI FOCUS(2026.4.16) · kdi.re.kr
- Anthropic, “Project Deal”(2026.4.24) · anthropic.com
- 전 세계 AI 사용자 분포 추정 그림(2026년 2월 SNS 확산, 원 출처 미상) · 소개 글 The Algorithmic Bridge
이 글은 SAPERE 정기 모임(2026.10.20, 10.29)의 내용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참여자의 이름과 소속은 밝히지 않았습니다.